장면1. 극장에 다섯 명이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미리 예매를 해 둔 덕에 다섯 명이 나란히 붙어 있는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섯 명이 의자에 앉는 서로 다른 경우의 수는 모두 몇 가지나 될까요?
장면2. 중국음식점에 친구 다섯 명이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탁이 있어서 그 곳에 앉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섯 명이 의자에 앉는 서로 다른 경우의 수는 모두 몇 가지나 될까요?
먼저, 장면1을 생각해 봅시다. 나란히 붙어 있는 다섯 개의 의자는 그 색깔이나 재질이 거의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개의 “자리”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자리는 스크린의 중앙에 좀 더 가까울 것이고, 어느 자리는 복도에 좀 더 가까울 것이고, 또 어느 자리는 앞자리에 머리가 큰 사람이 앉아 있을 수도 있을 수 있겠지요.
자, 먼저 한 친구가 자리를 고른다고 합시다. 다섯 자리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되니까 그 친구가 자리를 고르는 경우는 모두 다섯 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다음번 친구가 자리를 고른다고 합시다. 이미 한 친구가 자리를 골랐기 때문에 그 친구는 네 가지 경우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요. 이런 식으로 다섯 명까지 모두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5x4x3x2x1=120가지가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n명이 일렬로 되어 있는 자리를 고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n!입니다.
여기서 기호에 생소한 분들을 위해서... n!은 1부터 n까지의 정수의 곱을 나타내는 기호입니다. '엔팩토리얼' (n factorial) 이라고 읽으면 됩니다.
이제 장면2를 생각해 보도록 하죠. 장면1과 비슷하게, 원탁에 둘러 있는 다섯 개의 의자는 그 색깔이나 재질이 거의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자리'들도 과연 장면1처럼 다른 것일까요?
물론이죠!
어느 자리는 에어컨이 가까울 것이고, 어느 자리는 출입구에서 좀 더 가까울 것이고, 어느 자리를 창가에 가깝다던가 말입니다. 따라서, 장면1과 같은 상황이 연출됩니다. 첫 번째 자리를 고르게 되는 사람은 모두 다섯 자리의 선택의 여지가 있겠죠.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고른 자리를 제외한 네 자리의 선택의 여지가 있을 것이구요. 따라서, 이 경우에도 원탁에 둘러앉는 방법은 5!=120가지가 됩니다.
여기서, 고등학교 교육을 조금이라도 받으신 분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죠? (안느끼신다면야 뭐... --;;)
예, 맞습니다. 제목에 써 놓은 대로 원탁에 사람을 배치하는 경우의 수는 4!이 되어야 맞기 때문입니다. 어인 일일까요? 교과서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만, 사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가정이 하나 있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을 새로운 공간으로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혹시 영화 '매트릭스'를 아시나요? 거기 장면에 보면 주인공이 훈련을 받는 장면에서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에 놓이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현실속에서는 결코 불가능하지만, 이제 상상의 나래를 펴서 동서남북상하 어느 곳으로도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 공간에 장면1처럼 일렬로 배열된 의자가 다섯 개 놓여 있다고 생각해 보죠. 이 다섯 개의 의자는 서로 다른 ‘자리’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일렬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왼쪽 끝에 있는 의자와 오른 쪽 끝에 있는 의자는 다르겠구요, 가운데 앉느냐 끝에 앉느냐에 따라서 자기가 차지하는 여유공간도 물론 다르겠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장면1과 같이 5!=120가지가 됩니다.
그런데, 이런 공간에 덩그라니 원탁 하나와 의자 다섯 개나 놓여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다섯 의자들은 서로 다른 ‘자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면2나 위의 일렬로 배열된 의자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서 이 자리와 저 자리가 다른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의자’는 다섯 개가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모두 다 ‘같은 자리’이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서로 다른 '자리'는 사실상 하나 뿐인 셈입니다. 이 의자에 앉건 저 의자에 앉건 그게 그거기 때문이죠.
첫 번째 사람이 앉은 후, 이제 두 번째 사람의 선택을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사람이 이미 앉아 있기 때문에 남은 네 의자는 전혀 다른 자리의 특성을 나타냅니다. 즉, 첫 번째 사람의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따라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어떻게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밥먹기 불편해 지고 편해지고 하는 경험들, 있으신가요? 전 왼손잡이라 이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 그리고 첫 번째 사람의 바로 옆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사람이 고를 수 있는 서로 다른 자리의 개수는 네 가지가 됩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남을 것이구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다섯명이 원탁에 앉는 경우의 수는 4!=24가 됩니다. 이 상황을 일반화시켜보면, n명이 원탁에 앉을 수 있는 서로 다른 경우의 수는 (n-1)!이 되겠지요. 수학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원순열, 혹은 원탁에 배열하는 방법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순수하게 주변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원탁에만 집중해서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교과서에서 그리고 문제집에서 종종 사람을 “앉힌다”는 표현을 쓰는데, 강제적인 표현이라 그닥 좋은 말투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앉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들에게 기준을 맞춰서 “앉는다”는 표현이 보다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리에 사람을 갖다 맞추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고르는 게 정상적이겠기 때문이죠.